아이 앞니 깨짐 및 어금니 충치 오산 세교 치과 에서 빠르게 치료 후 살렸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산 세교 이포유 치과 서성용 원장입니다.
아이를 두고 있는 부모님들은
언제든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우실 겁니다.
혹여 아이가 갑자기 다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걱정을 말이죠.
저도 어렸을 때, 한번씩 다칠 때가 있어서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곤 했는데요 ^^..
지금은 어엿한 어른이 되어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오늘은 초등학생 환자분을 소개해드릴 건데요.
앞니 깨짐과 어금니 충치로 인하여
치료 받았던 증례입니다.
1. 구강 체크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
오산 세교 치과에 찾아오셨던 환자분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어머님과 같이 오셨는데요.
자초지종 들어봤는데, 장난을 치다가 크게 부딪혀서
앞니가 크게 깨졌다 말씀주셨습니다.
확인해봤는데 정말 심하게 깨졌더군요.
남는 부분이 거의 없었더라면,
어린 나이에 임플란트를 해야 되었을 겁니다.
지금은 신경치료 후 크라운을 씌워서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정도죠.
정말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볼 수 있네요.
그 외에 다른 문제는 없었는지 살펴봤는데,
37번 어금니에 충치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깊게 침투한 것 같진 않았으나,
확실한 체크가 필요하죠.
그리하여 엑스레이를 찍어봤습니다.

깊이 침투하지 않았기에 병소를 제거하고 나서
인레이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제 문제를 해결해야겠죠?
곧바로 깨짐 부위를 먼저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2. 인레이 및 신경치료 과정

치근단 사진을 보면,
더욱 정확하게 상태 파악이 가능합니다.
이제 그에 맞춰 오산 세교 치과는
앞니 신경치료를 진행합니다.

먼저 내부에 있는 치수 조직을 꼼꼼히 제거합니다.
그 이후, 세균이 존재하지 않도록
소독 과정을 거쳐줍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청결하게 소독이 잘 이뤄졌다면,
텅 빈 내부를 꽉 채워줘야겠죠?
충전재를 꾹 꾹 눌러 담아 빈틈없이 채워줍니다.

마지막으로 코어 작업을 진행하여
저작활동 시, 이가 부서지는 일이 없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줍니다.
그 위에 크라운을 씌우면
깨짐 문제는 모두 해결됩니다.

보철이 제작되기 까지
37번 어금니에 있는 충치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그리 깊지 않았기에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병소 제거 후, 인상 채득을 해줍니다.
그 뒤에 제작된 인레이를 씌워줌으로써 끝납니다.
그럼 최종 보철이 만들어지고 씌워진 결과를 볼까요?
깔끔하게 잘 씌워졌죠?
옆에 있는 11번이랑 비교했을 때도
크게 부자연스러움없이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환자분 어머님께서도 보셨을 때,
되게 자연스럽게 잘 되었다며 만족스러워 하셨습니다. ^^
3. 또 다른 충치
3개월 뒤, 오산 세교 치과에 검진 받으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더군요.
26, 27번 어금니 둘 다 나란히 충치 질환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깊지는 않은 듯 하였으나,
속을 열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죠?

먼저 26번을 체크해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범위도 넓고 깊이도 좀 있네요.
비워진 곳은 베이스 작업을 거친 뒤에
인레이를 씌워드려야 되겠네요.

이렇게 꼼꼼하게 다듬는 베이스 과정을 거쳐줍니다.

27번 어금니 역시 마찬가지로 충치를 제거하며,
인레이를 씌워줄 준비를 합니다.


이렇게 모든 과정을 다 끝냈습니다.
다행이었던 점은 3개월 안에 찾아오셔서
검진을 받았기에 그나마 간단한 처치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검진을 미루고 미뤘다면,
신경치료 후 크라운을 씌워야 되었을 겁니다.
앞으로 환자분은 어떻게 관리해야 되는지
오산 세교 치과 의료진이 알려드렸습니다.
올바른 양치질 방법을 시작하여
검진을 받으러 오셔야 되는 날짜까지 말이죠.
어머님과 자주 찾아뵙기를 약속하며
모든 진료는 다 끝났습니다.
오늘의 준비가 내일의 성공을 결정한다는 명언이 있듯이,
건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이 커지기 전에 미리 검진 받고
찾아서 빠른 처리를 이룬다면,
큰 문제없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들 아프지 말고 튼튼한 치아와 잇몸
100세까지 잘 지켜나가셨으면 합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산 세교 이포유 치과 서성용 대표원장이었습니다.